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고둔 사건 (문단 편집) == 여담 == * <쇼와 육군>의 저자 호사카 마사야스는 장쭤린 폭살에 참가했던 독립수비대 제2대대 4중대와 공병 20연대의 생존자들 중에서 이 사건에 가담한 자들의 증언을 얻기 위해 노력해보았으나 얻은 것이 없었다 한다. 다만 중일전쟁 중 전사했던 도미야 가네오가 1928년 말에 남긴 일기엔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었다. >추억이 많은 1928년이었다. 중대장으로서 중대의 통솔 및 수비 근무는 예년에 비해 성적 양호, 유쾌하게 생각할 만하다. 특히 동북 삼성 시국의 중심에 서서 마음껏 활동하고 봉천 수비대의 명성을 드높였다. 사실 만주는 우리 중대의 독무대였다. 공적 조사에서도 하사와 병졸은 대대 안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중대장으로서 아마도 올해가 내 황금시대일 것이다.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chino_Takema.jpg]] || || 마치노 다케마(町野武馬)의 모습 || * 장쭤린과 톈진까지 동행했던 육사 10기 출신의 예비역 대좌 마치노 다케마(1875~1968)는 아이즈 출신으로 반조슈파벌 인물이었다. 장쭤린 죽음에 개입했단 의심을 받던 그는 전후에 정계 자문위원으로써 우익 정치가로 활동했고 작가 야마모토 유조에게[* <쇼와 육군에는 이 시기가 1971년으로 나오는데 정작 마치노는 1968년에 죽은 후였다. 오타이거나 작가의 실수이거나 야마모토 유조가 그 내용을 정리한 때가 1971년이 아닌가 추정한다.] 장쭤린 암살 사건에 관한 자신이 아는 전말에 대해 털어놓았으며, 이 내용은 그가 희망한대로 그가 사망한 후 30년이 지나서 공개되었으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별 내용이 없었다. * 한편 현대 일본의 [[미카사]] 공원에서는 이 사건에 관련된 전시에서 폭탄 투척 내용을 누락한 채 [[코민테른]]의 소행이라는 [[https://twitter.com/DD110/status/1284337300831211522|역사수정주의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 해당 주장은 우익적인 성향이 짙은 일본 위키피디아에서도 신빙성이 적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 내의 소수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